- [종합] ‘95.6%의 압도적인 승률로 몽골 프로리그 제패’ 이선규 감독 “국내 지도자 위상을 높이고 싶어 도전…팀 구성원에 따라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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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이선규(44) 감독은 팀 큐브 에이전시를 통해 몽골 프로리그 감독직을 제의받았다. 고민이 많았다. 이 감독은 “외국 리그에 나가본 적도 없고, 몽골 리그가 생소해서 그랬죠. 근데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또 언제 도전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 큰 맘 먹고 가게됐죠”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몽골 남자 프로배구 하쑤 메가스타스 지휘봉을 잡게된 이 감독은 부랴부랴 몽골로 떠났다. 리그 개막을 불과 보름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보름이란 시간은 팀원들을 파악하기도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지만, 이 감독은 하쑤를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그것도 정규리그 18경기 17승1패, 플레이오프 2전 전승, 챔피언결정전 3전 전승까지, 무려 22승1패, 승률 95.6%의 압도적인 승률로 이뤄낸 쾌거였다.
몽골 프로리그를 제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 감독을 지난 11월 수원 모처의 카페에서 만나 소회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이 감독은 “에이전시를 통해 제의가 왔는데, 대표님이나 몽골 쪽에서도 제가 안 할거라고 생각했나봐요. 저 역시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다가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이 감독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최근 V리그 남자부에서 국내 지도자들의 위상이 크게 떨어진 게 컸다. 현재 남자부 7개 구단 중 삼성화재(김상우), 한국전력(권영민)을 제외하면 5개 팀이 외국인 감독들을 사령탑으로 쓰고 있다. 그는 “국내 지도자들이 외국 지도자들에 비해 지도력이나 실력이 그렇게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최근 위상이 많이 떨어져서 자존심을 살리고 싶었죠. 제가 국가대표로 한창 뛸 때만 해도 한국 남자배구는 아시아에서만큼은 1,2위를 하던 때였으니까. 저도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기도 하고. 그래서 자존심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몽골행. 한국과 몽골 문화가 달라 처음엔 고생을 많이 했다. 이 감독을 가장 힘들게 한건 선수들의 마인드였다. 그는 “선수들이 시간 약속도 항상 늦고, 늦어도 잘못했다는 생각을 안 하더라. 리그는 프로인데, 선수들은 프로 마인드가 전혀 없었다”라면서 “그래도 제가 한국에서 선수나 코치 생활을 한 것을 알고, 몽골 선수들이 저를 많이 존중해줬죠. 그래서 저는 가서 시간 약속이나 이런 생활적인 부분부터 바로 잡고, 훈련 스케쥴도 좀 힘들게 잡았는데 다 따라와주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선수가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의 아시아쿼터로 뛰었던 바야르샤이한이었다. 순천 제일고 3학년으로 편입해 인하대를 졸업한 바야르샤이한은 한국어에 능통하다. 올 시즌엔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에서 선택을 받지 못해 고국인 몽골리그에서 뛰고 있다. 이 감독과 몽골 선수들 사이에서 통역 겸 선수 역할을 하며 가교 역할을 제대로 했다. 이 감독은 “바야르샤이한은 한국어 뿐만 아니라 한글도 잘 쓰고 해서 큰 도움을 받았죠”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출범한 지 10여년 정도된 몽골 프로리그는 현재 남자 7개팀, 여자 9개팀이나 될 정도로 리그 규모는 커졌다. 다만 아직 홈/어웨이 개념은 없고,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2개 체육관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세미 프로 개념이다. 다만 외국인 선수도 4명이나 보유할 수 있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 감독이 맡은 하쑤는 최근 3년간 2위-2위-3위를 차지한 강호지만, 챔피언에 오른지는 5년이나 된 팀이었다. 강팀이긴 하지만, 이 감독이 원하는 배구를 하기엔 보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이 감독은 가장 먼저 몽골 배구 문화와 팀 선수 구성원들을 파악했다. 그리고 다른 팀들과 연습 경기를 통해 리그 분위기도 파악했다. 이 감독은 “한 두 달 내에 가장 팀 성적을 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게 무엇일까 고민을 했죠. 몽골 리그, 그리고 우리 팀 선수들을 보니까 화려한 플레이만 하려 하더라. 서브도 득점을 하건, 범실을 하건 뻥뻥 때리고, 각자가 개인 플레이만 하려 하고, 수비나 연결 등 궂은일은 대충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강조를 많이 했죠”라고 단기간에 성적을 낸 비결을 설명했다.
그리고 V리그에는 이미 모든 팀들이 일상적으로 갖추고 있는 영상분석 시스템을 몽골 프로리그에 도입한 게 이 감독이다. 그는 “한국은 HD카메라로 동작 분석 시스템인 다트피시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들이 자신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분석할 수 있는데, 몽골엔 그런 게 전혀 없더라고요. 그래서 휴대폰으로 선수들 플레이를 찍었죠. 그리고 선수들 하나하나 일일이 보여주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한다’고 피드백을 해줬죠. 그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저희가 삼각대에 휴대폰을 거치해서 찍고 하니까, 리그 끝날 때쯤 되니까 4~5개 팀들이 저희를 따라하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의 지도를 선수들이 잘 따라주면서 하쑤는 무적의 팀으로 변모했다. 1라운드에 5승1패를 한 뒤 2,3라운드는 6전 전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 감독은 “플레이오프나 챔프전 때는 제가 선수들에게 칭찬을 많이 할 만큼, 제가 구현하고자 했던 배구를 잘 해줬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물었다. 감독 이선규가 하고 싶은 배구가 있냐고. 그러나 이 감독은 “저는 지도자를 하면서 제 색깔? 저만의 배구 색깔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이유를 묻자 “제가 미들 블로커 출신이라고 ‘높이의 팀’을 만들겠다고 만들 수가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맡은 팀에 신장이 큰 선수가 없으면 높이의 팀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팀 구성원의 속성을 파악해서, 그 구성원에 맞는 배구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배구인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한양대 3학년 시절인 2003년 현대캐피탈에 입단해 2019년까지 현역에서 뛰며 통산 1056개의 블로킹을 기록했다. 은퇴 당시만 해도 이선규가 통산 블로킹 1위였을 정도로 현역 시절 최고의 미들 블로커로 군림했다. 현재는 신영석(한국전력)이 1303개로 이선규를 밀어내고 통산 1위에 올라있다. 이후 3년 간의 해설위원 생활을 거쳐 한국전력에서 두 시즌 간 코치로 지도자 생활도 경험했다. 이런 경험은 감독 이선규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이 감독은 “상황에 따라 선수 조합에 맞게 팀을 만들고 싶다. 몽골리그에서 감독을 하면서 그런 주관이 뚜렷하게 잡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몽골 리그 도전도 언젠가 다시 V리그로 돌아올 때를 위한 수련 과정이다. 이 감독은 “제가 선수 생활 때 경험했던 다양한 감독님들, 해설 때 경험, 코치 때의 경험 하나하나가 감독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외국 리그에서 외국 선수들의 문화를 이해한 이번 경험도 언젠가 V리그에서 감독이 됐을 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수원=남정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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