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원주체육관에서 열린 DB와 KCC의 맞대결에서 경기 후 선수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KBL 제공 |
|
지난 13일 DB전에서 패한 KCC 선수단이 고개를 숙인 채 라커룸으로 향하고 있다. KBL 제공 |
지난 13일 원주체육관에서 열린 DB와 KCC의 맞대결. 경기 종료 15초를 남기고 DB가 86-75로 크게 앞서고 있었다. 사실상 KCC의 마지막 공격인 상황에서 허웅이 3점슛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슛은 빗나갔다. 이때 DB 김시래가 리바운드를 잡은 뒤 쏜살같이 상대 코트로 넘어가 종료 10초를 남기고 레이업으로 2점을 추가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김시래가 달려가는 동안 코트에 있던 KCC 5명의 선수 모두 그 장면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불문율을 여겼다는 것이다. 농구계에는 암묵적으로 크게 이기고 있는 팀이 경기 마지막 공격권을 갖고 있으면 공격에 대한 의지를 표시하지 않다. 이에 KCC 허웅은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DB 선수들에게 불만을 표시했고, 심지어 경기 후에는 선수들끼리 충돌이 일어날 뻔 했다.
DB와 KCC는 현재 6강 플레이오프 마지막 티켓을 두고 경쟁을 하고 있다. 이날 경기 전까지 DB는 16승21패, KCC는 15승23패였다. 만약 이날 KCC가 승리했다면, 0.5경기 차 추격이 가능했다. 그러나 DB의 승리로 2.5경기 차로 벌어졌다. 아직 시즌이 15∼17경기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판도는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특히 DB와 KCC는 이날 경기 전까지 상대전적 2승2패로 맞섰다. 아직 한 차례 맞대결이 더 남있다. 승패 동률의 경우 그리고 골득실까지 따진다. 끝까지 득점에 나선 DB를 두고 불문율을 깼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상황을 모르는 KCC가 무지한 것일까.
|
지난 13일 KCC전에서 DB 김시래가 마지막까지 드리블을 치며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KCC 선수들은 이미 포기한 듯 고개를 숙인 채 포기한 모습이다. tvN 중계방송 캡처 |
|
DB 김시래가 결국 2점을 추가했다. 6강 PO 경쟁에 골득실을 챙기기 위한 영리한 득점이었다. KCC 선수들은 그 누구도 백코트를 하지 않았다. tvN 중계방송 캡처 |
|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KCC 허웅이 DB 김시래의 레이업슛을 두고 항의를 하고 있다. 신기성 해설위원은 "선수들 끝까지 해야죠"라고 말했다. tvN 중계방송 캡처 |
|
KCC 이호현이 마지막 공격에 나서자 DB 김시래와 이관희가 따라 붙으며 수비를 하고 있다. 10여점 차로 앞서 있어 승리가 확정적이지만, 마지막까지 실점을 막으려는 모습이다. tvN 중계방송 캡처 |
|
KCC 이호현의 공격은 DB 수비진에 막혀 결국 실패했다. 이 장면에서 DB 35번 서민수가 마지막까지 박스아웃을 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날 경기 불문율 논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tvN 중계방송 캡처 |
시계를 다시 돌려보자. 종료 10초전 김시래가 레이업에 성공하자, 불문율을 어겼다는 것에 화가 난 KCC 이호현이 드리블을 치며 달려 나오자 DB는 이관희, 김시래가 끝까지 따라붙으며 수비했다. 결국 KCC는 추가 득점 없이 패했다. 이 장면 속에는 승패의 의미가 없었다. 공격과 수비, 농구 그 자체였다. KCC는 불만을 표시하기 바빴고, DB는 끝까지 수비에 가담하며 상대 추가 득점을 막았다. DB를 두고 불문율을 깼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상황을 모르는 KCC가 무지한 것일가.
팬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이 불문율 때문에 ‘가비지 타임’이 생겼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1분 안쪽의 시간은 쓰레기라는 뜻이다. 돈을 주고 입장권을 산 팬들은 마지막 1분을 버려야 한다. 선수들이 지켜야할 암묵적인 룰과 지켜야할 예의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 때문에 팬들의 소중한 시간을 버려야 한다면, 가비지 타임 발생시 입장권 금액의 일부를 환불해야하는 규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프로스포츠는 팬이 있어야 존재하고, 팬이 가장 중요하다고 선수들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최근 농구계에는 이러한 불문율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일 우리은행과 삼성생명의 여자프로농구 WKBL 6라운드 맞대결. 경기 종료 약 17초전. 60-52로 앞선 우리은행이 공격권을 가지면서 불문율에 따라 가비지 타임이 시작됐다. 그런데 우리은행 이민지가 3점슛을 성공시켰다. 하상윤 삼성생명 감독은 “농구계의 암묵적인 룰이 아닌가.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다”며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됐나 싶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에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신인 이민지의 평균 득점이 더 올라갔으면 싶었다”며 “하상윤 감독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고 사과하며 일단락됐다. 경기당 평균 1득점으로 연봉이 달라지는 것이 프로의 세계다. 성과를 더 올리겠다는 신인의 시도가 과연 예의를 어긴 것인가. 예의 때문에 성과를 포기하는 것을 두고 과연 프로의 자격이 있을까. 직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 아닐까.
지난 13일 NBA에서도 클리블랜드 베테랑 센터 트리스탄 톰슨이 팀이 21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종료 10여초를 남기고 덩크슛을 꽂았다. 상대 감독은 “품위없는 무례한 행위였다. 용서할 수 없다”고 발끈했다. 데뷔 13시즌째인 톰슨은 올 시즌 평균 출전 시간 7분8초, 평균 1.7득점을 기록 중이다. 커리어 최저 기록이다. 이전까지 10분 미만 출전도, 평균 1점대 득점도 없었다. 기록을 챙기고 싶은 선수의 마음, 불문율이 더 중요한 것일까.
한국 농구 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에서는 수많은 농구계 명대사들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포기하면 그 순간 시합은 종료에요”라는 안 감독의 말, 그리고 이에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고 응답한 정대만의 대사. 수많은 농구인의 심금을 울렸다. 즉 스포츠의 진짜 힘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마음에 있다는 뜻이다. 프로농구가 탄생하고 끝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불문율, 이를 따지기 전에 일단 뛰는 것이 기본이다.
지난 12일 전희철 SK 감독이 작전 타임에서 선수들에게 전한 일침이 유난히 머릿속에 남는다. SK가 올 시즌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너희들 게임하는 자세가 왜 그러냐. 이기던 지던 마지막까지 해야지.”
권영준 기자 [email protected]
https://m.sports.naver.com/basketball/article/396/0000700413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