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의 향연들이 이어진다. 세트 승리에 1점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GS칼텍스 이영택 감독은 후위로 빠진 에이스 실바(쿠바) 대신 세터 안혜진, 전위로 올라온 세터 김지원 대신 아웃사이드 히터 김주향을 넣는 ‘더블 스위치’ 교체를 지시했다. 김지원 대신 신장이 더 큰 김주향을 넣어 블로킹을 강화해 한 점을 뽑거나 실점하더라도 전위에 공격 가능 자원을 3명을 두려는 교체로 읽혔다.
박정아의 공격을 받은 김미연의 디그가 그대로 페퍼저축은행 코트로 넘어왔고, 장위가 이를 쉽게 밀어넣으며 24-22. 이영택 감독은 작전 타임을 불렀다. 그리고 김주향에게 “레프트로 가서 리시브해”라며 리시브를 지시했다. 이미 리시브 라인에는 아웃사이드 히터 권민지, 김미연에 리베로 한수진이 있지만, 김주향도 함께 참여하라는 지시였다. 이에 김주향은 “제가요?”라며 자신 없는 모습을 보였다. 아웃사이드 히터에겐 리시브는 숙명이자 제1 임무임에도 감독의 리시브 지시에 반문하는 것부터가 코미디에 가깝다.
자신없는 표정으로 리시브 라인에 선 김주향에게 박정아의 서브가 어김없이 날아왔고, 김주향의 리시브는 크게 흔들려 공격도 해보지 못하고 페퍼저축은행에 공을 넘겨야 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쉽게 넘어온 공을 장위의 백 A속공으로 처리하며 24-23, 한 점차까지 따라붙었다.
원래도 리시브에는 그리 큰 강점이 없는 김주향은 180cm로 아웃사이드 히터로는 괜찮은 신장에 공격력이 좋아 비시즌에 3년 총액 7억2000만원의 FA 계약을 맺으며 GS칼텍스에 둥지를 튼 선수다. 이후 또 한 번 날아온 서브를 받아낸 뒤 퀵오픈을 시도했지만, 이는 197cm의 장위에게 여지없이 가로막히며 24-24 듀스가 됐다.
듀스가 되는 모습을 보며 벤치 의자에 앉아있던 실바는 코트에 다시 들어가려 했지만, 이영택 감독이 제지했다. 교체가 딱 1번 남았기 때문이었다. 경기 뒤 이영택 감독은 “교체가 4번이 남은 줄 알고 더블 스위치를 했는데, 그 전에 이주아를 권민지로 바꿨던 것을 제가 세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배구에서는 교체를 바꿨던 선수와 할 수 있다. 남은 교체 카드 1장으로 실바가 들어가려면 세터 안혜진과 교체를 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코트에 세터가 사라지게 된다. 실바가 전위였다면 리베로나 다른 선수들의 토스를 받아 어떻게든 때리게 했겠지만, 후위 백어택 토스는 세터가 아닌 선수들이 하기에는 난이도가 높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결국 이영택 감독은 실바를 투입하지 않았다.
이미 다 잡았던 세트를 따라잡힌 GS칼텍스. 팀원 전원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실바마저도 코트에 없는 상황에서 남은 선수들로는 이겨낼 힘이 없었다. 권민지의 퀵오픈이 막히고, 이한비의 오픈 공격이 코트에 꽂히며 3세트는 페퍼저축은행의 승리로 끝이 났다.
결국 GS칼텍스는 4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5세트로 끌고갔지만, 5세트를 12-15로 패하면서 세트 스코어 2-3으로 패했다. 시즌 21패(5승)째다.
경기 뒤 이영택 감독은 “오늘은 저 때문에 졌습니다. 선수들은 열심히 했습니다.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경기를 제 실수로 그르쳤습니다”라며 자신의 명백한 실수를 인정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 긴박한 승부 속에서 사령탑이 교체 카드를 착각할 수는 있다.
더 큰 문제는 실바에게만 의존하는 GS칼텍스 선수들의 태도다. 이날도 실바는 혼자 팀 공격의 51.2%를 책임지며 55점을 퍼부었다. 실바에게만 의존해서는 내년 시즌에도 또 똑같은 순위표를 받아들어야 한다. 실바가 버텨줄 때 GS칼텍스의 어린 선수들은 코트 위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지하고 수행해내며 성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감독의 리시브 지시에 “하겠다”라는 말이 아니라 “제가요?”라는 대답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선수들은 승부처에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이, 그저 코트에 서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김주향은 2억 중반대의 연봉을 받는 고액 연봉자다. 더 큰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령탑의 실수보다도 선수들의 배구, 승부처를 대하는 상황 때문에 더 씁쓸한 뒷맛을 남긴 GS칼텍스의 스물 한번째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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