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합] PS 직전 외인 교체 둘러싼 물음표… 이면에 숨은 안타까운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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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의 레오나르도 아폰소 감독. 사진=KOVO 제공 |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 그렇다고 뚜껑만 덮어놓을 수는 없다.
지난 11일이었다. 레오나르도 아폰소 KB손해보험 감독이 포스트시즌(PS) 직전 대한항공의 외인 교체에 대한 소신발언을 전하면서 이 문제가 일순 화제가 됐다. 사령탑은 “대한항공은 규정에 맞게끔 대처를 잘했다. 다만 규정 자체에 대해서는 한국배구연맹(KOVO)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시즌 전체를 한 외인과 함께하다가 플레이오프(PO)를 앞둔 중요한 시점에 다른 선수로 바꾸는 건 누구에게도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외인 교체에도 기한을 설정하는 등 대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V리그 선수등록 규정 제17조에는 ‘외국인 및 아시아쿼터 선수의 교체는 V리그(정규리그, 준플레이오프전, 플레이오프전, 챔피언결정전 포함) 기간 중에는 2회에 한해 가능하며 부상, 사건, 사고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리그에 뛸 수 없는 상황이 발생될 경우 이사회 승인을 득해 추가 교체가 가능하다’고 명시돼있다.
조건만 갖춘다면 시점과 상관없이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이를 활용해 챔프전 직전 무라드 칸 대신 막심 지갈로프를 투입해 통합 4연패를 이룩했다. 2021~2022시즌 우리카드가 정규시즌 최종전에 앞서 반월판 부상을 당했던 알렉스 대신 레오 안드리치를 영입해 PS 전력 강화를 노린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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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지갈로프가 지난 2023∼2024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대한항공 소속으로 팀 우승을 이끈 후, 기념 티셔츠와 모자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KOVO 제공 |
이와 같은 구단의 대처는 규정상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이를 이용해 PS 직전에 당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단기 알바’로 활용함으로써 단숨에 왕좌를 노리는 것이, 정규시즌의 연속성을 해칠 수 있다는 건 분명 생각해볼 문제라는 지적이다. 아폰소 감독의 문제 제기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심지어 사령탑은 “부상도 스포츠의 일부”라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대체외인 풀이 직전 트라이아웃 참가 선수로 제한되기 때문에 판도를 뒤엎을 거물이 갑작스레 영입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조금 더 좋은 경기력을 가진 선수의 당시 소속팀, 에이전트 혹은 개인 의지 등의 변수로 ‘단기 알바’가 가능해지는 경우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이런 시나리오가 꾸준히 나온다면, 정규시즌 36경기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빈익빈 부익부에 대한 지적도 더해진다. 배구계 고위 관계자는 “단기 영입은 정해진 급여 외에도 부대 비용이 많이 따라붙는다. 이런 기회를 노리는 외인 선수들도 있다. 이런 영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단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라며 “제도 전반을 개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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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카타르 두바이에서 열린 한국배구연맹(KOVO) 남자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한국전력 루이스 엘리안 에스트라다(왼쪽부터), 우리카드 마이클 아히, 삼성화재 마테이 콕, OK저축은행 마누엘 루코니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4명의 선수는 현재 모두 V리그에서 뛰지 않고 있다. 사진=KOVO 제공 |
KOVO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워낙 여러 이슈가 얽혀있어 외인 규정이 자주 바뀌어왔다. 현 규정도 그 논의 속에서 전 구단 합의를 통해 도출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규정의 이면에 숨은 ‘높은 외인 의존도’라는 한국 배구의 냉혹한 현실 때문에 극적인 변화를 시도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내 선수들의 추가 선수 등록은 3라운드 종료일까지만 가능하다. PS 진출 가능성이 높은 팀과 그렇지 못한 팀 사이의 트레이드 등으로 리그 밸런스가 무너지는 걸 막고 정규시즌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같은 이유라면 외인 선수에게도 비슷한 제한 규정이 있어야 하지만, 존재감이 독보적인 외인 선수에 대해서는 구단들이 스스로 족쇄를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연맹 관계자는 “외인 선수 없이 PS를 뛰어야 한다는 건 어느 팀이든 정말 큰 리스크라 현 규정이 유지 중”이라고 말했다. 모 구단 관계자 또한 “연맹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갑작스러운 부상 등으로 특정 팀의 외인 선수가 빠지면 무게추는 순식간에 기운다. PS 흥행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지금 이런 지적이 나오고는 있지만, ‘(의견을 낸 KB손보가) 반대 상황이었다면 이 문제를 도마 위에 올릴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는 반문도 조심스레 덧붙였다.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꾸준히 언급되는 외국인 선수 자유계약 전환과 얽혀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모 구단 고위 관계자는 “시즌이 끝나면 연맹의 강단 있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어떤 규정이든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하면서 보완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공정한 룰을 만들기 위한 연맹의 의지가 필요한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행운 기자 [email protected]
https://m.sports.naver.com/volleyball/article/396/000070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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