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 중요한 것은 빅네임이 아니고 레거시-파머스 인슈어런스오픈 관전기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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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 대회와 PGA 시그너처 대회가 생기면서 주요 골프대회의 총상금은 2000만 달러를 웃돈다. 파머스 인슈어런스 대회는 총상금 930만 달러로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금 규모 면에서 작은 대회처럼 보일 정도가 됐다.
소위 말하는 빅네임 골프선수 중 유럽 선수는 DP월드투어 일정을 이유로, 미국 선수는 TGL 스크린 골프대회 참여를 이유로, 또 다른 선수는 다음 주에 있을 AT&T 페블비치 프로암 준비를 위해 참여하지 않았다.
히데키 마쓰야마, 루트비히 오버그, 키건 브래들리, 임성재, 제이슨 데이가 우리 눈에 들어오는 선수였고, 대부분의 선수는 골프 팬의 관심을 많이 끌지 못하는 선수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골프대회는 골프 팬에게 흥미를 주었고, 골프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골프대회의 성공은 빅네임 선수의 참가 여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란 사실도 깨닫게 해주었다.
토리 파인스의 남코스와 북코스가 모두 훌륭했다. 바다와 코스의 대비, 코스의 레이아웃, 벙커와 그린의 조화가 완벽했다. 1라운드와 2라운드 중 한 라운드를 북코스에서 진행되었고, 나머지 3라운드는 남코스에서 진행되었는데, 경기는 북코스에서 얻은 성적을 남코스에서 어떻게 지켜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었다.
루트비히 오버그는 첫날 9언더파를 치며 북코스를 정복했지만, 둘째 날 3오버파, 셋째 날 2오버파, 넷째 날 7오버파를 기록하며 공동 42위로 경기를 마쳤다. 이민우 선수가 좋아하는 표현을 빌려서 말한다면, ‘북코스를 요리한(cook) 루트비히 오버그는 남코스에서 농락당했다(cooked).’

7802야드로 전장이 긴 토리 파인스 남코스는 코스레이팅79, 슬로프레이팅 151로 PGA 대회가 진행되는 가장 어려운 골프 코스 중 하나다. 코스레이팅이 79라는 것은 핸디캡 0인 골프가 플레이했을 때의 기댓값이 7오버파라는 의미다. 슬로프레이팅은 보기 플레이어가 느끼는 난이도를 55에서 155까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전 세계 골프 코스의 평균 슬로프가 113이기 때문에 151은 골퍼가 평생 만나볼 수 있는 코스 중 최상위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US오픈에서 타이거 우즈가 우승할 때의 최종 성적이 이븐파였다는 것만 봐도 토리 파인스 남코스가 얼마나 어려운 골프 코스인지 짐작할 수 있다.
코스의 전장은 길고, 페어웨이는 좁고, 러프는 깊고, 그린은 언듈레이션이 심했다. 퍼팅 그린은 단단하고 빠르게 조성되어 있었고, 해안가 바람은 매서웠다. 둘째 날 경기는 바람으로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바람은 골프의 중요한 일부이므로 번개와 비가 아닌 바람만으로 경기가 중단되는 경우는 골프에 좀처럼 없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해리스 잉글리시는 마지막 4라운드에서 13번 홀까지 티샷에서 페어웨이를 한번 밖에 지키지 못했지만, 타수를 한 타만 잃으면서 선전했다. 그의 우승 비결은 다양한 쇼트게임이었다. 마지막 날 한 타 차 어려운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그는 그린 주변에서 퍼터로, 웻지로, 아이언으로, 우드로 다양한 방식으로 핀을 공략했고, 그 공략은 상황에 적절하게들에 맞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 맞는 어프로치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해리스 잉글리시가 보여주었다. 그는 8언더파로 샘 스티븐스를 한 타 차이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임성재는 한때 선두에 2타 차로 접근하여 우승을 바라봤지만, 15번 홀 보기로 주춤하면서 공동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롱게임에서 훌륭한 샷을 여러 차례 선보였고, 어려운 코스에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우승자 해리스 잉글리시와 임성재 선수에게는 보너스 같은 소식도 전해졌다. 2월 13일에 LA 리비에라 골프클럽에서 개최되는 시그너처 대회인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날이 LA 산불로 인해 개최지를 토리 파인스로 변경한다는 결정이 대회 중에 나왔다. 강한 바람과 어려운 코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자신감과 코스 적응을 끌어 롤린 해리스 잉글리시와 임성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다.
파머스 인슈런스 오픈은 1952년에 시작되어 1968년부터 토리 파인스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 대회는 중간에 몇 차례 스폰서가 교체되었지만, 73년간 지속되면서 골프선수와 골프 팬에게 어려운 골프의 진수를 보여주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아름다운 골프의 레거시다.
골프 팬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레거시지 빅네임이 아니다. 이 대회에서 선전한 선수들이 다음 대회인 AT&T 페블비치 프로암과 WM피닉스 오픈을 거쳐, 타이거 우즈가 주최하고 우리나라의 제네시스가 후원하는 시그니처 대회인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날에서 선전하기를 기대한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https://m.sports.naver.com/golf/article/382/000117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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